“ 그래. 나처럼 괜찮은 사람은 많지 않을거야. “ -프롤로그, 14p-
불편했다. 적나라하게 나를 비춰내어서...
“ 그래.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 “ 얼마나 많은 자기기만이, 진득한 이기심이 이 글을 읽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흘러왔을까? 태초의 인간이라는 아담의 원죄에서 왔을까?
거대한 인류의 역사 안에 얼마나 지독하게 배어있을까?
세상에 갑은 흐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갑이었고 또 누군가에게 을이 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갉아먹으며 살아간다.
왕이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 줄 왜 모르겠나. 알면서 간신을 쓰는 이유는 그만큼 편하기 때문이지. 왕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굳이 속마음을 입술로 옮기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주지. 입안에 있는 혀처럼, 풀숲을 조용히 미끄러지는 뱀처럼. -사람은 어떻게 흑화하는가, 27p-
나는 흑화할 용기도, 순수를 지킬 용기도 없는 겁쟁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비겁하니 나도 비겁해도 괜찮은걸까? 아니 아니다. 아주 아니다.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흑화하던지 순수를 지키던지.
몰랐다. 지금껏 몰랐다는 게 신기하게도 진심으로 몰랐다. 그래, 살아지는 대로 살았나보다. 흑화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 아니다. 마흔의 나는 세상과의 타협이 비겁하다고 할 만큼 순진하지 않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을 살지 않겠나.
" 케익이 몇 조각 남았니? 세 조각 남았지. 니네가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넷 중 하나라도 케익을 포기하게 만들어선 안되는 거야. 차라리 셋 다 안 먹고 말아야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시시한 인생, 인간마저 시시해지면, 53p-
나 인생 정말 시시하게 살았거든. 이제부터라도 시시하지 않게 살아야겠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어떻게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어거지로 덮어쓴 껍데기 벗고, 못하는 거 못한다고 말하고 케익 한 조각 주면 나눠 먹으면서 살면 되지. 겁내지 말자! 그래 인생 시시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그렇습니다. 모든 건 당신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의미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 세상과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정확하게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말입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고통받은 만큼만 진실입니다.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67p-
남이 주는 거 받아먹으며 살지 말자. 이날까지 두려워하며 살았으면 됐지 않나. 지금까지 겁쟁이로 살았으면 충분하지 않나. 눈을 뜨고 정면으로 마주 서보자. 그래 마흔이면 혼자 설 때도 됐지 않겠나.
" <뽀빠이>에 나온 불후의 명언이 있죠. '나는 나인 것이다.(I am what I am)'"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70p-
안다. 알고 있다. 살아보니 흑화하며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내 목소리 내며 당당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지 잘 알고 있다. 시시하게 살지 않겠다고? 웃기는 소리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하지만! 살아보고 싶다. 한번 뿐이래매! 인생! 나로, 한사람으로! 숟가락에 지지말고, 비굴하게 무릎 꿇지 않고 서 보고 싶다. 영화<베테랑>에 나온 대사처럼 "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라며 살아 보고 싶다.
-어디선가 아버지가 센서 등을 깜빡일 때, 전체-
나도 그랬다. 아버지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강남은 아니더라도 판교에 땅이라도, 아니면 아파트라도 하나 사두지. 이런 생각 나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내게 많이 미안해하셨다. 망나니같은 둘째에게 뭐 그리 미안하신지 자꾸 미안하다고 하셨다. 언젠가 가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고기를 사주시면서 그러셨다. 미안하다고, 아버지가 고시공부해서 미안하다고, 그냥 의대 갔으면 지금 떵떵거리며 살게 해줄 텐데.. 미안하다고..
아버지 청년 때 거리로 나서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고 싶던 의대가 아닌 법대를 가셨단다. 목소리를 내고 싶으셨다고.. 세상의 부조리에서 한 숟가락이라도 덜고 싶으셨다고.. 근데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더란다. 고시에 실패하고 그도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게 되면서 실패자가 되어가더란다.
아버지는 참 열심히 사셨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각 한번 하지 않고 열심히 일 하셨다. 주말이면 언제나 청소를 하시고, 우리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다. 항상 책을 보며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는 어린 내게 큰사람이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더 비굴해졌던 것은 나였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다만 당신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비굴하셨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어딘가에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센서등이든 촛불이든 뭐든 간에 깜빡여 보고 싶다. 아빠 내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선에게서 배워야 한다. 침묵하면 그다음은 내 차례란 것을. 내가 침묵하면 나 자신도 꼼짝없이 금 밟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당신과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진짜 금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왕따당하고 마녀사냥당하는 이를 위해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변호한 적이 있는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악이 승리하기 위한 필요조건, 177p-
알겠지만 왕따 편을 들면 같이 왕따가 된다.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그룹에서,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두렵더라. 그래서 나도 '보라의 일당'이었다. 그럼 이제는 금 안밟았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훈련이 필요하다. 체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 위해서, 평생 단 한번이라도 냄새 같은 건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일어서는 훈련부터 하는 것.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인 것 같다.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 185p-
그게 지금 나다.
" 도망치는 사람한테 비상구는 없어. 나 다신 도망 안 가. 그러니까 니들 다 진짜 까불지 마라. " -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199p-
<동백꽃 필 무렾>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적당히 눈치를 봐야 매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으면 기다린다거나, 회사의 세무신고를 적당히(?) 하는 것 등등 매끄러워야 편하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거짓말을 하면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사람이 거짓을 말 한 사람이라더라. 자신의 자존감, 자신의 마음에, 양심에 그 만큼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당당하려고 한다. 나 뿐 아니라 다음사람을 위해서라도 해야할 말은, 해야 할 일을 당당하게 하려 한다. 비록 불편해지더라도 하찮아져야 쓰겠는가. 그리고 죽이기야 하겠나. 그래서 나도 만들었다. 나만의 원칙. 그러니 니들 다 진짜 까불지 마라. 이제 나도 원칙이 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읽었다. 두 번 읽었다. 그런데 감당하지 못할 글이 더 많다. 아직 여물지 않은 내가 읽기에 퍽퍽한 마음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은 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책을 권해주신 분께 참 감사한다. 인생을 바꿔준 책이 있냐고 누가 물어보면 할 말이 생겼다. 프롤로그에 쓰인 글처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더라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별수 없구나'란 마음과 함께 여기까지 와있는 내게 참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멋도 모르면서 참 애썼구나 싶어서 짠하기도 했다. 변한다고 했지만 똑같이 살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껍질을 나온 이상 자라던지 고사하던지 모두 내 것이다. 이제 나는 인생을 살러 간다.